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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

독서생활

by 찬0 2024. 6. 17.


올해 가장 화제가 된 책 중 하나는 ‘세이노의 가르침’이다. 신문에 연재했던 칼럼과 인터넷에 썼던 글이 큰 주목을 받아 팬들이 만들어 공유하던 책이 정식으로 출판되어 나왔다. 나도 출간된 책을 구매해 읽기도 했는데 2년 전쯤 블로그를 통해 이미 읽은 바 있었다.

세이노를 처음 안 것은 제대하고 얼마 되지 않은 이십 대 중반 무렵이다. 주말에 만난 매형이 ‘세이노의 부자 아빠 만들기’라는 칼럼을 꼭 읽어보라는 말을 들었었다. 그의 칼럼을 몇 편 흥미롭게 읽긴 했는데 이내 잊어버렸다. 그즈음 가장 열심히 읽었던 책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의 교재로도 쓰인다던 오규원 시인의 ‘현대시작법’으로 기억한다.

당시 책을 재밌게 읽은 기억은 별로 없는데 군대에서부터 들인 독서습관은 제대 후에도 이어졌다. ”넌 책이 재밌어?“ ”아니?“ ”근데 왜 읽어?” “그냥, 읽어야 할 것 같아서.”이런 대화를 많이 나눴다.  

태어나 가장 먼저 읽은 책은 무엇일까? 아마 성경책이었을 것이다. 이해는 되지 않았지만 내가 눈 뜬 가정은 그런 환경이었다. 기억 속에 한 권을 끝까지 읽은 최초의 책은 ‘어린왕자’로 기억한다. 누나에게 생일선물로 받은 것인지 그냥 준 것인지 모르지만, 시골 큰집에서 할머니 방에 엎드려 읽은 기억이 있다. 그런데 누나에게 선물 받은 책을 왜 큰집에서 읽는 장면으로 기억하는 건지, 잘못된 기억일지도 모르겠다. 큰집에 있던 ‘논리야 놀자‘, 국민학교 교실 책장 안의 ’세계 7대 불가사의‘이런 책들이 기억난다. 중학교 때부턴 만화책만 셀 수 없이 읽었다.

군대와 이십 대의 독서 습관은 직장생활을 하며 멈췄다가 언제부턴가 다시 조금씩 읽어나가고 있다. 동료의 권유로 매일 같이 술 마시다 어느 날 이렇게 말했다. “오늘부터 저 술 안 마시려고요.” “왜?“ ”그냥, 기분이 안 좋아요.“ 그렇게 술을 끊고 동료도 끊기고 다시 독서생활을 즐기고 있다.

올해 사랑받은 책 중엔 물리학자 김상욱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인간‘도 있었고, 유시민 작가의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도 있다. 나는 두 권의 책도 다른 빅히스토리 책도 읽긴 했는데 읽고 나면 이런 생각을 한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멍하니 앉아 있다 보면 계획이나 문장보다는 떠오르는 두 개의 장면이 있다. 하나는 농사일을 끝낸 외할아버지가 대청마루에 앉아 마을 풍경을 보며 파이프 담배를 피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퇴근한 아버지가 밥상 앞에 앉아 성경책을 읽고 계시는 모습이다.

그제 밤에 병원에 가기 위해 시골에서 매형집에 올라 온 아버지를 만났다. 뇌졸중인 아버지는 나를 평소처럼 반겼는데 내가 누군지 아시냐고 묻자 잘 모르겠다고 멋쩍게 얼버무렸다. 아버지 언어능력이나 기억력을 살리려면 대화를 많이 해야하는데 하루종일 말씀도 안 하신다는 어머니의 말에 아버지의 휴대폰에 성경 오디오북을 설치해드렸다. 성경을 읽어나가는 성우의 음성에 맞춰 휴대폰 화면 속 문장에 표시가 되는데 아버지는 글자를 읽지 못하셨다. 매형이 교회는 잘 나가시냐고 물었는데, 아버지가 교회 가기 싫어한다고 어머니가 말했다. 난 성경 오디오북에 집중한 아버지의 얼굴을 보며, 언젠가 아버지가 내게 했던 “교회 안 나갈 거면 집 나가라.”라는 말을 생각했다.

파이프 담배를 멋지게 태우던 외할아버지는 돌아가셨고, 매일밤 성경을 읽던 아버지는 이제 성경을 읽지 못하신다. 나는 올해 퇴근하고 졸면서 읽은 책들의 내용이 대부분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책을 왜 읽을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래도 책을 읽을 읽을 것이다. 수많은 책을 읽고 싶다. 눈물보다 깊은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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