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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

언젠가

by 찬0 2023. 12. 29.

 

아버지가 뇌경색에 걸렸다. 멍하니 앉아 묻는 말과 상관없는 말들을 하셨다고 한다. 친구분이 이상하다 싶어 아버지 휴대폰에서 누나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누나는 병원에 좀 모셔달라고 말했다. 아버지가 검사를 받는 동안 누나는 시골에 내려갔다. 아버지를 차에 태워 당진 병원에서 인천 병원에 모셨다. 

병원에 가족이 모였다. "아버지가 휴대폰에 비밀번호를 안 걸어 놓아서 다행이야. 쓰러지시고 나서야 병원에 간 게 아니라서 다행이야. " 아버지는 누나도 나도 매형도 조카도 못 알아보신다. 가까운 사람이라는 느낌은 갖고 계신데 자신과 무슨 관계인지는 가늠할 수 없으신 것 같다. 

첫날엔 말이 되지 않는 외국어 같은 말을 하셨는데 드문드문 고향 지명을 말하셨다 한다. 둘째 날엔 소통은 되는데 이상한 단어를 쓰셨다. 셋째 날부터는 언어능력이 많이 나아지셨는데 여전히 사람에 대한 분별은 못하신다. 어머니를 유일하게 알아보셨는데 “마누라!”하시곤, 이십 년 만에 본 듯 “많이 늙었네.”하셨다. 

묻기 전에 먼저 하시는 말은 시골집의 마당 수도가 얼었을 것과 개밥을 줘야 한다는 것, 그리고 병원비 얼마 나왔냐고 자주 물으시곤 이제 괜찮다고 지겨우니 퇴원하고 싶다고 하셨다. 그리고 내가 친구에게 말하듯 자신이 이렇게 늙을 줄 몰랐다는 푸념을 하셨다. 

그런 생각을 가끔 했다. '언젠가 또는 머지않아 부모님이 더 늙으실 것이다, 돌아가실 것이다. 나도 늙을 것이다.' 골몰하기 힘들었다. 상상은 아픈 어금니나 새끼발가락처럼 생생할 수 없다. 그런데 이제 현실이 됐다. 

전혀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다던 첫날, 아버지에게 영상통화가 왔었다. 받지 못했다. 시간을 살펴보면 이미 친구 분과 병원에 가신 후고 누나의 차를 타실 때쯤이다. 실수라기엔 아버지는 내게 한 번도 영상통활 건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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