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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6

2010년, 가을, 친구의 꿈 4호선 끝자락에 있는 정왕역 근처에서 살았다. 나는 자주 가던 카페에서 일했다. 퇴근하면 밤 열 시쯤 되었다. 4호선은 항상 사람이 많았는데 내가 내리는 정왕역쯤 되면 한산해졌다. 한 번은 퇴근하고 집에 들어갔는데, 엄마가 여자친구는 어디 사느냐고 물었다. 난 그런 생물은 키우지 않았기에 없다고 대답했다. 그럼 전철에서 서로 기대 자던 여자는 누구냐고 엄마가 되물었다. 나도 낙엽 지고 해도 홍시처럼 익었던 그해 가을, 서로의 온기로 피로를 달래던 그 여자의 얼굴이 몹시 궁금했다. 2010년은 혼자서 영화를 처음 본 해이기도 했다. 카페에 출근하려 옷을 입으며 티브이 화면을 보고 있었다. 영화 ‘인셉션’의 예고편 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아, 저건 꼭 보고 싶은데? 개봉이 언제지? 그때까지 같이 볼 아리따.. 2024. 1. 5.
행복의 비결은 성장과 감사라든데 시골에 다녀왔다. 시골에서 엄마와 누나와 김장했다. 누나와 난 둘 다 인천에 살고 있는데 내가 차가 없기에 시골에 갈 땐 보통 누나가 태워준다. 난 원래 차만 타면 잠드는데 아무래도 시골까지 운전하는 누나에게 미안해 졸음을 참는다. 우린 시골에 가는 동안 차 안에서 음악도 라디오도 듣지 않고 서로 수다만 떤다. 출발한 지 삼십 분 정도 지났을 때 내가 누나에게 말했다. "얼마 전에 이사님이랑 출장 갔다 왔거든? 가는 데 한 시간 반 정도 거리라 서로 아무 말도 안 하면 어색하잖아. 이사님이 먼저 말하시더라고. '퇴근하면 뭐 해? 저녁은 어떻게 먹어? 요리해서 먹기도 하니?' 나는 예능이나 드라마를 보기도 하고 요리를 하거나 배달 음식을 먹기도 한다고 답하고선 나도 이사님에게 물었어. '이사님은 주말이나 .. 2023. 10. 4.
아버지의 ‘무빙’ 요즘 드라마 무빙을 보고 있다. 1980년대 후반 국정원의 전신인 ‘안기부’가 활동하던 시기부터 현재가 배경이다. 초능력을 가진 전직 안기부 특수요원들이 은퇴 후 자식을 돌보며 자영업을 한다. 돈까스 가게, 미용실, 치킨집, 슈퍼마켓, 중고서점 등 장사한다. 등장인물 중 치킨집을 운영하는 장주원(류승룡), 일명 ‘구룡포’에 집중하는 에피소드 내용이다. '아빠는 일용직을 십 년 동안 했다고. 4000일의 일용직으로 집을 샀는데, 자신이 학교에서 일으킨 문제 때문에 모은 돈과 집을 잃었다고.’ 장주원의 딸 장희수가 내레이션 한다. 시간 배경은 장주원이 안기부에서 도망치고 치킨집을 하기 전이다. 장주원은 딸(희수)과 함께 여러 번 이사 다니며 일용직을 전전한다. 몇 년이 지나고 자리 잡은 직장은 탄광이다. 장.. 2023. 9. 12.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고.. , J.D 샐린저/이덕형 옮김, 문예 출판사(1985) 하여튼 12월이었다. 날씨는 마녀의 젖꼭지처럼 매섭게 추웠다._p11 국도를 횡단하자 내가 이대로 사라지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었다. 정말 미치광이 같은 오후였다. 무섭게 추운 데다 햇빛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길을 건널 때마다 흡사 사라져 가는 기분이었다._p13 그가 그렇게 요란하게 끄덕이고 있는 것이 열심히 사색하기 때문인지 아니면 엉덩이와 팔꿈치를 구별할 수 없을 만큼 늙었기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_p17 그는 악수할 때 상대편의 손가락을 마흔 개 정도 부러뜨리지 않고는 직성이 풀리지 않을 그런 유형이었다._p133 앤톨리니 선생은 다시 담배에 불을 당겼다. 악마처럼 담배를 피웠다._p275 그런데 비가 미친놈처럼 오기 시작했다. .. 2023. 9.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