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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

겨울 왕국

by 찬0 2023. 12. 20.

 

85세의 할머니가 동장에게 쓴 편지 기사를 읽었다. 빠듯하게 아이들을 키우느라 남을 도운 일이 없다며, 일 년 동안 빈 병을 수거하고 팔아 모은 돈 삼십만 원을 힘든 사람을 위해 써 달라는 편지였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의 모티브는 고전 동화 눈의 여왕이라 한다. 눈의 여왕 이야기는 악마로 시작한다. 악마는 누구든 추하게 비추는 거울을 만들었고, 천사를 비춰보기 위해 거울을 들고 하늘로 올라가던 중 이를 떨어뜨린다. 깨진 거울은 눈처럼 떨어지며 사람들의 눈과 가슴을 찌르는데, 거울 파편을 맞은 사람은 감정을 잃는다. 파편을 맞은 사람 중 카이라는 아이를 눈의 여왕이 데려간다. 

어제 집에 돌아오는데 중년의 남성 한 분이 집 앞 골목에 주저앉아 있었다. 곁엔 디스플러스 담배갑과 모자가 널브러져 있었다. 해진 안전화와 눈 감은 그의 얼굴을 보다 흔들어 깨웠다. “어르신, 괜찮으세요?” 몇 번 흔들자 그가 조용히 말했다. “술을 많이 마셨어.” 건너편 카센터에서 사장으로 보이는 남성 한 분이 말했다. “경찰에 연락했어요. 고마워요.” 집에 들어가 씻고 식사를 하고 카페에 갔다. 카센터 사장님의 고맙다는 말이 몇 번 떠올랐다. 

눈의 여왕은 세 번의 입맞춤을 한다. 첫 번째 입맞춤은 추위를 잊게 하고, 두 번째 입맞춤은 사랑하는 사람을 잊게 만들고, 세 번째 입맞춤은 목숨을 앗아간다. 카이를 구하러 온 게르다는 흐느끼며 카이에게 입맞춘다. 게르다의 따듯한 눈물이 카이의 가슴에 박힌 거울 조각을 녹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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