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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읽고..

by 찬0 2023. 8. 29.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룰루 밀러 지음/정지인 옮김, 곰출판(2021)

오만한 신념은 악마를 만들고, 언제나 구원의 달빛은 사랑뿐._내 감상

성장한다는 건, 자신에 대한 다른 사람의 말을 더 이상 믿지 않는 법을 배우는 거야._p316


저자인 룰루는 자살을 시도했던 과학기자다. 저자는 여자인데 여자와 하룻밤을 보내고 연애하는 남자에게 이를 고백한다. 이별하고 오래 괴로워한다. 살아갈 이유와 희망, 기댈 곳과 몰두할 것을 찾는다. 룰루는 1800년 중후반에서 1900년 초중반까지 활동한 분류학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인물에게 집중한다.

조던이 십 년 또는 이십 년 동안 수집한 물고기 표본이 지진으로 인해 대부분 소실된다. 소실됐다고 말한 뜻은 물고기를 잃어버린 것은 아니다. 알코올이나 에탄올에 담가두고 이름표를 적었던 유리병이 모두 깨져 수집과 기록의 의미를 대부분 잃어버렸다. 조던은 바로 연구실 바닥에 제멋대로 흩어진 물고기 중에 이름을 기억할 수 있는 것을 집어 든다. 아가미나 입에 직접 이름표를 꿰맨다.

룰루가 조던에게 기대고 희망을 기대한 것은 이 지점이다. 좋아하고 평생 노력한 일이 한순간에 망쳐졌을 때 절망하지 않고 바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몰두하는 자세. 룰루는 조던의 일대기를 조사하며 조던의 비밀, 생각, 신념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조던의 신념은 물고기를 조사하는 일이, 각각 차이를 찾아가는 일이 신의 뜻을 아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이 신념은 점점 생물에겐 등급이 있다는 생각을 갖게 했고 이는 사람도 마찬가지라고 믿는다. 조던은 후에 유대인을 학살하는 히틀러의 사상에 영향을 미친 우생학을 지지하고 발전시키는 데 기여한다. 조던은 후에 스탠퍼드 대학의 초대 학장도 지내는데 이사장이었던 제인이 자신을 해고하려 하자 독살한다.

룰루는 조던에게 기대하던 강한 신념이 잘못된 믿음에서 비롯됐다는 걸 알았다. 조던에게선 찾지 못했으나 조던을 조사하는 과정 중에 만난 우생학의 피해자들에게서, 새로 만난 애인에게서 삶의 가치를 얻는다.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은 실제 현대적인 분류에서 어류는 인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한 것이다. 예를 들어 어류는 포유류•설치류 같은 종으로 분류할 수 있다. 물에 산다는 점 말고는 어류만의 공통된 특징이 없다는 것이 현대과학이나 생물학의 결론이라고 한다.

조던이 수단을 가리지 않으면서까지 지키고 삶을 바친 분류학. 물고기를 조사함으로 생물과 신의 뜻을 밝히고자 했던 일은 현대 생물학과 다르다. 생물에 우성과 열성, 계급은 없고 거기에 신의 뜻도 없으며 물고기 또한 없다.

룰루는 이 사실이 악마 같은 인물인 조던에게 작은 복수가 됐으면 한다고 말한다. 덧붙여 말한다. 우리가 안다고 확언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과학조차도.




종종 생각했다. 난 무엇을 느꼈나. 결국 사랑인 걸까. 과학자도 철학자도 시인도 할머니 할아버지도 룰루도 ‘사는 거 뭐 우리끼리 잘 지내는 거지.’라고 말하는 듯하다. ‘우린 죽고 언제일지 알 수도 없고 행복은 저기도 있지만, 여기가 더 중요하지 뭐’라고 말하는 듯하다. 또 ‘살아계실 때 잘해,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라고 말하는 듯하다.

너무 당연한 말들. 그런데 ‘뒤돌려차기‘ 설명을 듣고 원리를 알고 동영상을 보거나 직접 보고 완벽히 이해했다고 해서 뒤돌려차기를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난 또 불효자고 소중한 사람을 함부로 대하고 시간을 후두둑 흘리고 아직도 살 날이 오래 남았고 나아질 것이고 언젠가 다 잘 되고 해낼 거라고 그날이 오면....

               김수영 시인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낡아도 좋은 것은 사랑뿐이냐

 



오래된 이야기다. 고향에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십수 년이 지났을 때였다. 그동안 고향에 가고 싶은 마음도, 관심도 없었다. 일상을 미루면서까지 의욕이 커진 것은 어느 일요일 점심때였다.    

외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도시에 사는 우리 집에 왔다. 우리 가족과 함께 도심가를 벗어난 곳에서 식사를 했는데 가게 밖을 나설 때 비가 내렸다. “우린 좀 걸을란다.” 외할아버지가 말했다. 두 분은 손을 잡고 가게 밖에서 비를 맞고 서 계셨다. 며칠 뒤 나는 고향에 갔다.

어릴 때 살던 곳과 자주 가던 곳을 걸었다. 어른들을 만났고 어느 무덤을 찾아 잡초를 뽑았다. 고향에서 무엇가를 찾고 있었지만 대단한 것은 없었다. 얻은 게 있다면 고향 자체가 아닌 가는 동안 돌아오는 동안 했던 생각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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