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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저녁 빌라의 낮은 담 위를 고양이 한 마리가 걸어온다 고양이는 담에서 뛰어내려 지프차 밑으로 들어가 나오지 않는다 나는 길에 엎드려 차 밑의 고양이를 본다 바퀴 옆에 웅그린 고양이가 나를 보다 눈을 감는다 나는 일어나 담배를 피운다 두 개비를 피우자 다른 고양이가 담에서 뛰어내린다 차 밑의 고양이가 튀어나와 길 밖으로 뛰어나간다 담에서 뛰어내린 고양이가 먼저의 고양이를 쫓아 길 밖으로 뛰어나간다 빗방울이 떨어진다 그녀가 현관을 나오다 다시 들어간다 나는 고양이가 뛰어나간 길을 바라본다 빗줄기가 길어진다 그녀가 현관을 나와 우산을 펼친다 2024. 1. 1.
할머니 여섯 살 나에게 고양이를 선물한 그녀는 나는 태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알아보지 못하는 아흔둘 할머니 독방에 갇힌 듯 성경을 읽다 고향에 가고 싶다며 사라지던 아버지의 어머니 아파트 입구에서 놀이터와 플라타너스와 비뚤게 늘어선 차들의 아파트 입구에서 엄마와 아빠와 누나와 매형과 조카가 앞서 걷고 있을 때 내 손을 잡고 걷던 할머니 천국인갑다 내가 늙어 죽어 천국에 왔는 갑다 2023. 12. 27.
가로등은 초라하고 다스했다 차가운 벤치에 앉아 나눈 짧은 대화와 긴 키스 세상은 아름답고 고요했다 빈 시간 동안 바라본 밤하늘엔 하나의 별이 빛나고 있었다 2023. 12. 22.
훈련소에 내리는 눈 검 꽂은 소총을 구령에 맞춰 찌른다 연병장에 눈이 내린다 조교가 십 분간 쉬라고 한다 전우 어깨에 핀 찰나의 눈꽃 내 장갑 위에도 피어나고 넌 왜 향기가 없니 연병장에 눈이 내린다 먼 나라에서 온 흰나비 떼처럼 지우며 내린다 2023. 12.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