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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11

아버지의 ‘무빙’ 요즘 드라마 무빙을 보고 있다. 1980년대 후반 국정원의 전신인 ‘안기부’가 활동하던 시기부터 현재가 배경이다. 초능력을 가진 전직 안기부 특수요원들이 은퇴 후 자식을 돌보며 자영업을 한다. 돈까스 가게, 미용실, 치킨집, 슈퍼마켓, 중고서점 등 장사한다. 등장인물 중 치킨집을 운영하는 장주원(류승룡), 일명 ‘구룡포’에 집중하는 에피소드 내용이다. '아빠는 일용직을 십 년 동안 했다고. 4000일의 일용직으로 집을 샀는데, 자신이 학교에서 일으킨 문제 때문에 모은 돈과 집을 잃었다고.’ 장주원의 딸 장희수가 내레이션 한다. 시간 배경은 장주원이 안기부에서 도망치고 치킨집을 하기 전이다. 장주원은 딸(희수)과 함께 여러 번 이사 다니며 일용직을 전전한다. 몇 년이 지나고 자리 잡은 직장은 탄광이다. 장.. 2023. 9. 12.
등목 무슨 나무였는지 모르겠다. 바람이 몹시 불었다. 바람에 나뭇잎들이 차륵차륵 부딛쳤다. 소나기가 내리는 것만 같은 시원한 소리였다. 나무가 아니라 숲이었고 여름밤이었다. 군대였다. 난 병장이었다. 시간은 0시쯤이었나? 독서실이었다. 책을 읽었다. 소설, 시, 자기계발. 영어 단어와 한자를 외우기도 했다. 공부는 해 본적 없었다. 고졸에 피시방과 알바를 전전하다 입대했고 곧 제대였다. 그래서 군대에서 책을 읽었다. 노크도 없이 몇 평 되지 않는 독서실의 문이 열리고 영화가 고갤 들이밀었다. “역시, 너 있을 줄 알았다.” 난 ‘웬 일이야?’라고 말했던 것 같다. 영화는 내 동기고 친했던 적은 없었다. 내 동기들은 모두 친하지 않았다. 희생이란 말은 천국처럼 멀고 서로 의지한 기억도 없이 병장이 되기까지 비겁.. 2023. 9. 1.
9층의 나라 아파트 십오 층을 오르고 있었다. 엘리베이터는 빨간 글씨의 고장이란 명찰을 달고 꼿꼿하게 낮잠을 때리고 있었다. 평소 체력엔 자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이상일뿐 지팡이에 의지하는 노인처럼 계단 손잡이에 늘어지고 있었다. 유행이었던 찢어진 걸레짝 같은 청바지와 혓바닥을 내민 롤링스톤즈 로고가 가슴에 새겨진 흰 티가 몸에 질척거렸다. 아마 매력적인 소녀를 집에 바래다준 뒤 돌아오는 길은 아니었고 파스타집 알바나 피시방에서 오는 중이었을 것이다. 갈아입을 옷도 별로 없었지만 어딜 가든 되지도 않는 간지를 뽐냈던 것이다. 한 번은 친구들 약속에 평소 가지 않던 중심가의 피시방에 갔는데 “제 것만 계산할게요, 34번인가?”하자 카운터를 보는 여직원이 말했다. “성포동 김간지 씨 맞으세요?” 이름을 부르는 여직원.. 2023. 3.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