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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

MBTI에 대한 짧은 단상

by 찬0 2023. 10. 11.

 

내가 MBTI검사를 처음 안 것은 2005년쯤이다. 친구가 학교에서 들었다며 알려주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간단하게 검사할 수 있는데 약 90개 정도 문항이 있으며 20~30분 정도 소요된다고 했다. "성격검사래, 유료로 검사하는 건 문항이 더 많고 내용이 자세하다곤 하는데 보통 무료검사만 하나 봐. 너도 한 번 해 봐." 


'왜 사람마다 생각과 신념이 다를까?'



1차 세계대전 중에 심리학자 칼 융은 스스로 이런 질문을 갖고 깊이 고심했다고 한다. 전쟁에 끌려가 스러지는 젊은이들을 보며 전쟁을 한탄한 이유였다. 1921년 융은 그간의 생각을 담아 '심리 유형'이라는 책을 독일에서 출간한다. 책을 통해 외향성, 내향성이라는 개념을 처음 소개하고 네 가지 기능 요소인 '감각, 직관, 사고, 감정'에 대해 말한다. 책 '심리 유형'은 1923년 영문으로 번역되어 미국에도 알려지는데 이를 미국에 한 여성이 읽는다. 평소 성격과 심리에 관심이 많았던 캐서린 쿡 브릭스다. 캐서린은 융의 심리 유형을 공부하며, 추리소설을 준비하는 딸(이사벨 브릭스 마이어)에게 보여준다. 모녀는 성격 분류 이론을 함께 만들어 나가기 시작한다. 

모녀는 이론을 테스트할 기술이 없어 펜실베니아에 있는 컨설턴트 에드워드 헤이를 찾아간다. 헤이는 모녀들의 성격 이론을 듣고 사업성이 있다고 판단했고 모녀와 함께 직업 적성 테스트로 만든다. 1950년, 학과 시험 테스트 기관에 있던 헨 쇼서가 이를 도입하고 연구소를 만든다. 이후 모녀의 이름을 딴 MBTI(마이어스-브릭스 유형 지표, Myers-Briggs Type Indicator)는 미국에서 일본을 거쳐 한국으로 들어오게 된다.

훗날 융은 모녀가 만든 성격 유형 지표에 동의하지 않았다고 한다. 융은 외향성과 내향성을 제외한 네 가지 요소는 확립한 개념이 아니었으며 이 요소들을 이분법 사고로 구분 지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고 알려져 있다. 현재 과학자 대부분은 MBTI 검사에 신빙성이 없다고 말한다. 5주 기간을 기준으로 테스트한 결과 50% 이상의 사람이 다른 결과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현재 심리학과 정신과에서 쓰는 검사는 MMPI(다면적 인성검사)와 EPQ(아이젱크 성격검사)다. 그러나 2019년 EPQ 검사마저도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발표됐다. 오늘까지 가장 신빙성 있는 성격 이론은 '빅5'다. 빅5는 외향성, 신경성, 성실성, 친화성, 개방성으로 성격 유형을 분류하는 검사다. 이 중 네 가지는 전두엽과 뇌 활성도로 사람마다 형태가 다름을 확인한다.

여기까지가 MBTI에 대한 짧은 내력이다. 유튜브에 MBTI라고 검색하면 셀 수 없는 콘텐츠 영상이 나온다. 이 검사에 대한 인터뷰에서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는 중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학생과 "MBTI를 물어 나와 맞지 않는 타입의 이성에겐 관심이 생기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성인을 봤다. 이미 발명된 지 오래됐고 신뢰할만한 가치가 높지 않다고 판단된 이 성격 유형 검사가 지금 성행하는 이유는 뭘까. '나를 알고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와 소속감, 타인의 이해, 대화 소재와 콘텐츠의 활용성'이 이유일까. 그런데 이 이유들보다 실은 '빠르고 쉬우니까'가 가장 큰 원인이일수도 있지 않을까. 

MBTI의 유행은 욕구와 흐름이 맞물린 현상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유행은 지나간다. 재밌게 즐기면 되고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만일 수도 있다. 부작용과 예외는 언제나 있어 왔다. 편견에 잠식되지만 않으면 문제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조절하고 절제하는 사람의 능력은 어느 정도일까. '사람이 습관을 만들고 습관도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생각난다. 정보는 많고 시간은 없다. 빨리 보고 빨리 배워야 하며 빨리 판단해야 한다. 거기에 사람까지 포함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빠르고 쉬운 방법은 대체로 가치의 크기와는 반비례하지 않을까. 그런 방법에 사람은 빼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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