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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11

괴물과 형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 괴물을 봤다. 초등학교 오학 년의 남자아이 둘과 부모와 선생, 교장 선생님이 주로 나온다. 편견과 각자의 사정, 동심, 아이들의 우정과 사랑 같은 걸 다룬 달까. 간단하게 설명하긴 어렵다. 모두 개인의 사정과 편견과 욕심을 가졌고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걸, 틀린 게 아니라 서로 다르다는 걸, 좀 더 너그럽게 바라봐야 한다는 이야기 또한 담겨 있을까. 추리와 반전 같은 느낌도 극 안의 극이 담긴 옴니버스 같은 시선의 구성도 있다. 아이들의 이야기는 정말 아이들의 생각과 행동, 시절을 보여주고 돌이키게 했다. 인성적인 영화였고 흔하지 않은 영화였다. 내가 국민학교 이학 년 때인가. 오락실에서 친구들과 게임을 했다. 친구가 우연히 고장 난 오락기 뒷면에 돈통을 발견했는데 몇 명이서.. 2024. 3. 4.
2010년, 가을, 친구의 꿈 4호선 끝자락에 있는 정왕역 근처에서 살았다. 나는 자주 가던 카페에서 일했다. 퇴근하면 밤 열 시쯤 되었다. 4호선은 항상 사람이 많았는데 내가 내리는 정왕역쯤 되면 한산해졌다. 한 번은 퇴근하고 집에 들어갔는데, 엄마가 여자친구는 어디 사느냐고 물었다. 난 그런 생물은 키우지 않았기에 없다고 대답했다. 그럼 전철에서 서로 기대 자던 여자는 누구냐고 엄마가 되물었다. 나도 낙엽 지고 해도 홍시처럼 익었던 그해 가을, 서로의 온기로 피로를 달래던 그 여자의 얼굴이 몹시 궁금했다. 2010년은 혼자서 영화를 처음 본 해이기도 했다. 카페에 출근하려 옷을 입으며 티브이 화면을 보고 있었다. 영화 ‘인셉션’의 예고편 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아, 저건 꼭 보고 싶은데? 개봉이 언제지? 그때까지 같이 볼 아리따.. 2024. 1. 5.
언젠가 아버지가 뇌경색에 걸렸다. 멍하니 앉아 묻는 말과 상관없는 말들을 하셨다고 한다. 친구분이 이상하다 싶어 아버지 휴대폰에서 누나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누나는 병원에 좀 모셔달라고 말했다. 아버지가 검사를 받는 동안 누나는 시골에 내려갔다. 아버지를 차에 태워 당진 병원에서 인천 병원에 모셨다. 병원에 가족이 모였다. "아버지가 휴대폰에 비밀번호를 안 걸어 놓아서 다행이야. 쓰러지시고 나서야 병원에 간 게 아니라서 다행이야. " 아버지는 누나도 나도 매형도 조카도 못 알아보신다. 가까운 사람이라는 느낌은 갖고 계신데 자신과 무슨 관계인지는 가늠할 수 없으신 것 같다. 첫날엔 말이 되지 않는 외국어 같은 말을 하셨는데 드문드문 고향 지명을 말하셨다 한다. 둘째 날엔 소통은 되는데 이상한 단어를 쓰셨다. 셋.. 2023. 12. 29.
겨울 왕국 85세의 할머니가 동장에게 쓴 편지 기사를 읽었다. 빠듯하게 아이들을 키우느라 남을 도운 일이 없다며, 일 년 동안 빈 병을 수거하고 팔아 모은 돈 삼십만 원을 힘든 사람을 위해 써 달라는 편지였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의 모티브는 고전 동화 눈의 여왕이라 한다. 눈의 여왕 이야기는 악마로 시작한다. 악마는 누구든 추하게 비추는 거울을 만들었고, 천사를 비춰보기 위해 거울을 들고 하늘로 올라가던 중 이를 떨어뜨린다. 깨진 거울은 눈처럼 떨어지며 사람들의 눈과 가슴을 찌르는데, 거울 파편을 맞은 사람은 감정을 잃는다. 파편을 맞은 사람 중 카이라는 아이를 눈의 여왕이 데려간다. 어제 집에 돌아오는데 중년의 남성 한 분이 집 앞 골목에 주저앉아 있었다. 곁엔 디스플러스 담배갑과 모자가 널브러져 있었다... 2023. 12.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