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8

어느 리 어느 리 마당에 경운기가 세워진 집을 지나 좁은 골목들이 모이는 교회에 나무 위에 오르는 아이들과 막대기로 칼싸움하는 아이들 예배 시간이 되자 도착하는 허름한 트럭과 사륜 오토바이들 사륜 오토바이에선 할머니들이 선캡을 벗으며 성경책을 꺼내고 막대기를 던지며 지나가는 아이가 내게 밝게 말했다 안녕하세요! 바닷가 언덕 손잡고 걷는 이십 대 남매의 어스름 지나 가로등 하나 없는 새카만 밤하늘의 수십 개 별들 걷기 힘든 나는 랜턴 어플을 다운받았다 2024. 6. 17.
포도 손님이 남긴 과일 안주 속 포도 한 알이 태어나 처음 느끼는 맛 이 포도는 상한 것일까 매일 반복하는 일상과 꿈꾸는 일탈 때문일까 봄은 고양이로소이다를 읽고 심해진 시 쓰기의 배고픔일까 자 이 포도 껍질은 단물 빠진 풍선껌 같았소 조금 덜 읽은 조기살 같은 과육 과즙은 맛있는 물감 같았소 씨가 부서질 땐 황토 아까시나무 아래 땅 파서 먹어봤던 그 황토와 비슷했소 세상도 포도도 그대로라면 변한 것은 나뿐이니 이 포도는 오늘 나의 맛 아니 내가 씹은 세상의 맛 아니 오늘과 내가 부딪쳐 깨진 파편 아니 오늘까지 견뎌 만든 진주 아니 오늘 아니 아 포도는 무슨 맛이냐 2024. 4. 13.
활짝 너의 미소가 내 머릿속에 만개한다 긴 머리 찰랑대며 눈 쪽 귀 쪽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내 사랑은 살며시 포갠 손보다 오래 마주하지 못한 눈맞춤보다 카페 안 나를 바라보는 빈 의자 위에 있다 너를 바래다주기 위해 날은 저물고 네 웃음소리에 내 하루는 장난으로 물든다 사랑은 함께 키우는 고양이 같은 것 열어둔 창문으로 훌쩍 넘어와 갸르릉거리고 어루만짐 곁에 스르르 눈이 감긴다 2024. 3. 4.
바다 발자욱이 지워지네요 허기지듯 바람 불고 할 말들 입김처럼 사라지네요 가없는 물결 보고 있으면 어느새 바위까지 차오르네요 노을처럼 안고만 싶네요 2024. 2.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