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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생활 올해 가장 화제가 된 책 중 하나는 ‘세이노의 가르침’이다. 신문에 연재했던 칼럼과 인터넷에 썼던 글이 큰 주목을 받아 팬들이 만들어 공유하던 책이 정식으로 출판되어 나왔다. 나도 출간된 책을 구매해 읽기도 했는데 2년 전쯤 블로그를 통해 이미 읽은 바 있었다. 세이노를 처음 안 것은 제대하고 얼마 되지 않은 이십 대 중반 무렵이다. 주말에 만난 매형이 ‘세이노의 부자 아빠 만들기’라는 칼럼을 꼭 읽어보라는 말을 들었었다. 그의 칼럼을 몇 편 흥미롭게 읽긴 했는데 이내 잊어버렸다. 그즈음 가장 열심히 읽었던 책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의 교재로도 쓰인다던 오규원 시인의 ‘현대시작법’으로 기억한다. 당시 책을 재밌게 읽은 기억은 별로 없는데 군대에서부터 들인 독서습관은 제대 후에도 이어졌다. ”넌 책이 재밌어.. 2024. 6. 17.
어느 리 어느 리 마당에 경운기가 세워진 집을 지나 좁은 골목들이 모이는 교회에 나무 위에 오르는 아이들과 막대기로 칼싸움하는 아이들 예배 시간이 되자 도착하는 허름한 트럭과 사륜 오토바이들 사륜 오토바이에선 할머니들이 선캡을 벗으며 성경책을 꺼내고 막대기를 던지며 지나가는 아이가 내게 밝게 말했다 안녕하세요! 바닷가 언덕 손잡고 걷는 이십 대 남매의 어스름 지나 가로등 하나 없는 새카만 밤하늘의 수십 개 별들 걷기 힘든 나는 랜턴 어플을 다운받았다 2024. 6. 17.
포도 손님이 남긴 과일 안주 속 포도 한 알이 태어나 처음 느끼는 맛 이 포도는 상한 것일까 매일 반복하는 일상과 꿈꾸는 일탈 때문일까 봄은 고양이로소이다를 읽고 심해진 시 쓰기의 배고픔일까 자 이 포도 껍질은 단물 빠진 풍선껌 같았소 조금 덜 읽은 조기살 같은 과육 과즙은 맛있는 물감 같았소 씨가 부서질 땐 황토 아까시나무 아래 땅 파서 먹어봤던 그 황토와 비슷했소 세상도 포도도 그대로라면 변한 것은 나뿐이니 이 포도는 오늘 나의 맛 아니 내가 씹은 세상의 맛 아니 오늘과 내가 부딪쳐 깨진 파편 아니 오늘까지 견뎌 만든 진주 아니 오늘 아니 아 포도는 무슨 맛이냐 2024. 4. 13.
활짝 너의 미소가 내 머릿속에 만개한다 긴 머리 찰랑대며 눈 쪽 귀 쪽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내 사랑은 살며시 포갠 손보다 오래 마주하지 못한 눈맞춤보다 카페 안 나를 바라보는 빈 의자 위에 있다 너를 바래다주기 위해 날은 저물고 네 웃음소리에 내 하루는 장난으로 물든다 사랑은 함께 키우는 고양이 같은 것 열어둔 창문으로 훌쩍 넘어와 갸르릉거리고 어루만짐 곁에 스르르 눈이 감긴다 2024. 3. 4.
괴물과 형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 괴물을 봤다. 초등학교 오학 년의 남자아이 둘과 부모와 선생, 교장 선생님이 주로 나온다. 편견과 각자의 사정, 동심, 아이들의 우정과 사랑 같은 걸 다룬 달까. 간단하게 설명하긴 어렵다. 모두 개인의 사정과 편견과 욕심을 가졌고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걸, 틀린 게 아니라 서로 다르다는 걸, 좀 더 너그럽게 바라봐야 한다는 이야기 또한 담겨 있을까. 추리와 반전 같은 느낌도 극 안의 극이 담긴 옴니버스 같은 시선의 구성도 있다. 아이들의 이야기는 정말 아이들의 생각과 행동, 시절을 보여주고 돌이키게 했다. 인성적인 영화였고 흔하지 않은 영화였다. 내가 국민학교 이학 년 때인가. 오락실에서 친구들과 게임을 했다. 친구가 우연히 고장 난 오락기 뒷면에 돈통을 발견했는데 몇 명이서.. 2024. 3.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