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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가을, 친구의 꿈 4호선 끝자락에 있는 정왕역 근처에서 살았다. 나는 자주 가던 카페에서 일했다. 퇴근하면 밤 열 시쯤 되었다. 4호선은 항상 사람이 많았는데 내가 내리는 정왕역쯤 되면 한산해졌다. 한 번은 퇴근하고 집에 들어갔는데, 엄마가 여자친구는 어디 사느냐고 물었다. 난 그런 생물은 키우지 않았기에 없다고 대답했다. 그럼 전철에서 서로 기대 자던 여자는 누구냐고 엄마가 되물었다. 나도 낙엽 지고 해도 홍시처럼 익었던 그해 가을, 서로의 온기로 피로를 달래던 그 여자의 얼굴이 몹시 궁금했다. 2010년은 혼자서 영화를 처음 본 해이기도 했다. 카페에 출근하려 옷을 입으며 티브이 화면을 보고 있었다. 영화 ‘인셉션’의 예고편 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아, 저건 꼭 보고 싶은데? 개봉이 언제지? 그때까지 같이 볼 아리따.. 2024. 1. 5.
사과 환한 낮은 부끄럽고 어둔 밤은 무서워 온 세상 붉게 물드는 노을이 좋아 매일 바라보다가 기다리다가 노을처럼 붉게 몸이 타 버렸어 2024. 1. 5.
행복에 관한 고찰 행복에 관한 책을 읽고 나서 짧은 감상문을 쓴 적 있다. 그런데 과연 행복이 뭘까? 어쩌면 “너는 왜 사니?”라고 묻거나,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처럼 생각하지 않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행복을 물을수록 불행해진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행복은 객관적 조건과 주관적 기대 사이에 있다고 한다. 행복은 쾌락, 만족, 안정과 관련된 호르몬 수치와 빈도라고도 한다. 목표와 그에 대한 기대만 있다면 그러니까 희망만 있다면 행복할 수 있다고도 한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의식주에 큰 문제가 생기지 않는 정도라면, 돈과 물질은 행복에 별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고 한다. 하지만 행복에 돈이 필요한 건 당연하다. 그것도 꽤 큰돈이. 부모님이나 나 자신이 당장 아프고 돈이 문제인데 거기다 대고 뇌과학이나 마음가짐에 대.. 2024. 1. 1.
초저녁 빌라의 낮은 담 위를 고양이 한 마리가 걸어온다 고양이는 담에서 뛰어내려 지프차 밑으로 들어가 나오지 않는다 나는 길에 엎드려 차 밑의 고양이를 본다 바퀴 옆에 웅그린 고양이가 나를 보다 눈을 감는다 나는 일어나 담배를 피운다 두 개비를 피우자 다른 고양이가 담에서 뛰어내린다 차 밑의 고양이가 튀어나와 길 밖으로 뛰어나간다 담에서 뛰어내린 고양이가 먼저의 고양이를 쫓아 길 밖으로 뛰어나간다 빗방울이 떨어진다 그녀가 현관을 나오다 다시 들어간다 나는 고양이가 뛰어나간 길을 바라본다 빗줄기가 길어진다 그녀가 현관을 나와 우산을 펼친다 2024. 1. 1.
언젠가 아버지가 뇌경색에 걸렸다. 멍하니 앉아 묻는 말과 상관없는 말들을 하셨다고 한다. 친구분이 이상하다 싶어 아버지 휴대폰에서 누나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누나는 병원에 좀 모셔달라고 말했다. 아버지가 검사를 받는 동안 누나는 시골에 내려갔다. 아버지를 차에 태워 당진 병원에서 인천 병원에 모셨다. 병원에 가족이 모였다. "아버지가 휴대폰에 비밀번호를 안 걸어 놓아서 다행이야. 쓰러지시고 나서야 병원에 간 게 아니라서 다행이야. " 아버지는 누나도 나도 매형도 조카도 못 알아보신다. 가까운 사람이라는 느낌은 갖고 계신데 자신과 무슨 관계인지는 가늠할 수 없으신 것 같다. 첫날엔 말이 되지 않는 외국어 같은 말을 하셨는데 드문드문 고향 지명을 말하셨다 한다. 둘째 날엔 소통은 되는데 이상한 단어를 쓰셨다. 셋.. 2023. 12.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