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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여섯 살 나에게 고양이를 선물한 그녀는 나는 태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알아보지 못하는 아흔둘 할머니 독방에 갇힌 듯 성경을 읽다 고향에 가고 싶다며 사라지던 아버지의 어머니 아파트 입구에서 놀이터와 플라타너스와 비뚤게 늘어선 차들의 아파트 입구에서 엄마와 아빠와 누나와 매형과 조카가 앞서 걷고 있을 때 내 손을 잡고 걷던 할머니 천국인갑다 내가 늙어 죽어 천국에 왔는 갑다 2023. 12. 27.
고흐와 엄마 퇴근하고 밥도 먹고 드라마 요약도 보고 커피도 마시고 엎드려 누웠다. 쉬운 책을 읽고 싶었다. 전에 골라 놓았던 책 중 만화가 눈에 띄었다. 글 그림, 바바라 스톡 / 번역, 이예원의 그래픽 노블 ‘반 고흐’였다. 만화라서 보기 편했다. 만화라면 중학교 때 학원 선생님이 "이제 학원도 방학인데 넌 뭐 할 거야? "라고 물었던 게 생각난다. "만화책 스무 권 쌓아놓고 읽을 거예요. 머리맡엔 전기난로 켜 놓고 컵라면에 아이스크림에 귤도 먹으면서. 그러다 잠들 거예요."라고 대답했다. 선생님은 "뭐? 나랑 똑같네? 너 벌써 인생을 아는구나.”했었다. 책에서 눈에 띄었던 점은 고흐가 상대와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늘 자기 이야길 늘어놓는다는 점이다. 동생인 테오와 친구였던 우체부 조셉 룰랭을 제외하면 그를 좋아하.. 2023. 12. 25.
크리스마스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크리스마스란 무엇일까? 아무도 모른다는 진짜 탄생일과는 별개로 어쨌든 예수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이다. 한국의 크리스마스는 1945년 해방 이후 미군정에 의해 공휴일로 지정됐다. 이후 한국전쟁이 끝난 1950년대 중반부터 이미 연인의 날이 되어갔다. 1960년대에도 여관이 꽉 찼다는 기사가 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숙박업소의 방값은 관광지처럼 오름에도 방을 찾기 위해 분주한 남녀가 흔하다. 일 년 중 가장 많은 콘돔이 팔려나간다. 이제 막 연인이 된 커플은 설레고, 오랜 커플은 기분 좀 내고 맛있는 걸 먹는 기념일처럼 느낀다. 그럼 솔로는? 연인이 없는 청년에도 종류가 있다. 이태원, 홍대, 강남 등 번화가나 시내에 놀러 가는 부류, 만남 어플을 열심히 넘기는 부류, 괜스레 휴대폰의 전화번호부와 카카오톡 .. 2023. 12. 24.
가로등은 초라하고 다스했다 차가운 벤치에 앉아 나눈 짧은 대화와 긴 키스 세상은 아름답고 고요했다 빈 시간 동안 바라본 밤하늘엔 하나의 별이 빛나고 있었다 2023. 12. 22.
겨울 왕국 85세의 할머니가 동장에게 쓴 편지 기사를 읽었다. 빠듯하게 아이들을 키우느라 남을 도운 일이 없다며, 일 년 동안 빈 병을 수거하고 팔아 모은 돈 삼십만 원을 힘든 사람을 위해 써 달라는 편지였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의 모티브는 고전 동화 눈의 여왕이라 한다. 눈의 여왕 이야기는 악마로 시작한다. 악마는 누구든 추하게 비추는 거울을 만들었고, 천사를 비춰보기 위해 거울을 들고 하늘로 올라가던 중 이를 떨어뜨린다. 깨진 거울은 눈처럼 떨어지며 사람들의 눈과 가슴을 찌르는데, 거울 파편을 맞은 사람은 감정을 잃는다. 파편을 맞은 사람 중 카이라는 아이를 눈의 여왕이 데려간다. 어제 집에 돌아오는데 중년의 남성 한 분이 집 앞 골목에 주저앉아 있었다. 곁엔 디스플러스 담배갑과 모자가 널브러져 있었다... 2023. 12. 20.